이옥수 작가는 대한민국 청소년문학계에서 오랜 시간 주목받아온 작가로, 현실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체로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을 선보여왔습니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먼지야 안녕』, 『마지막 박쥐 공주 미가야』 등 다양한 청소년 소설을 집필해왔으며, 그중에서도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는 10대 청소년들의 감정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대표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잔잔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청소년기의 고독, 상처, 성장, 그리고 희망이 교차하는 복잡한 감정들이 담겨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옥수 작가 특유의 문체적 특징을 중심으로,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 속에 녹아 있는 문학적 장치와 감성 표현을 다각도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감정 중심의 서술 방식
이옥수 작가 문체의 핵심은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감정 중심 서술'에 있습니다. 그녀는 사건 중심이 아닌, 감정의 미세한 결들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갑니다.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에서도 이 같은 서술 방식이 도드라지는데, 이는 독자가 단순히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느끼고 함께 경험하게 만드는 강력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윤희가 친구와의 갈등을 겪는 장면에서는 사건 그 자체보다 그 상황 속에서 윤희가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더 비중 있게 다룹니다. 단순한 다툼이 아닌, "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마음이 식어버린 것 같았다"와 같은 문장은 관계의 변화보다 내면의 상실감을 강조합니다. 이옥수 작가의 문장은 화려하거나 복잡하지 않지만, 그만큼 독자의 감정을 그대로 스며들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한, 서사 전개 중간중간 인물의 생각을 내면 독백 형식으로 삽입하여 감정선의 흐름을 끊김 없이 이어갑니다. "나는 잘 웃는 아이였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으니까."와 같은 문장은 겉으로 보이는 인물과 속마음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동시에, 청소년들이 느끼는 정체성과 자아 사이의 혼란을 잘 드러냅니다. 감정 중심의 서술은 독자가 주인공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효과적이며, 특히 감정에 민감한 청소년기 독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옥수 작가의 이러한 문체는 단순한 감성적 묘사를 넘어 독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의 역할도 수행합니다.
은유와 상징의 활용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라는 제목만 보아도 이 작품이 은유와 상징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겨울은 전통적으로 차가움, 정체, 고독을 의미하며, 기린은 현실에서 보기 드문 존재, 또는 멀고도 막연한 희망을 나타냅니다. 즉, 작가는 제목을 통해 이미 청소년기의 단절감과 성장 욕망,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작품 내내 등장하는 '기린'이라는 상징은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이 아니라, 주인공이 만나고 싶어 하는 어떤 이상향, 혹은 위로의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내면이 얼어붙은 겨울을 지나며, 그 속에서 기린이라는 환상적 존재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자아를 재발견합니다. 이때 기린은 단지 보러 가는 대상이 아니라, 내면의 따뜻함과 회복을 향한 갈망의 대상인 셈입니다. 이옥수 작가는 이러한 상징을 직접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독자에게 여지를 남깁니다. 기린이 실제로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그것을 결국 만나게 되는지도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린은 독자의 상상 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대입하게 만드는 여운 있는 상징으로 작용합니다. 작품 속 사물, 계절, 풍경 역시 은유적으로 활용됩니다. 예를 들어, 창밖의 나무가 흔들리는 장면은 인물의 불안정을, 비 오는 날씨는 감정의 침잠을, 눈 내리는 풍경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자연물의 활용은 단조로울 수 있는 일상 서사에 생동감을 더하고, 인물 감정을 확장시키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이러한 문학적 상징은 단지 교과서적인 해석이 아니라, 독자 각자의 삶과 감정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여운을 남기기에 더욱 깊이 있는 독서를 가능하게 합니다.
대화체와 일상 언어의 조화
이옥수 작가 문체의 또 다른 강점은 청소년들의 실제 언어 감각을 반영한 대화체와 일상 언어의 활용입니다.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는 고등학생이라는 배경 설정에 걸맞게, 대사 하나하나가 청소년 특유의 감정 기복, 즉흥성, 그리고 거리감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교과서적인 언어가 아닌, 현실적이고 살아 있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인물 간의 관계를 더욱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진짜 웃기지도 마. 너 그렇게 말할 자격 없어."라는 대사는 감정의 고조와 갈등의 폭발을 단 몇 마디로 표현하며, 현실에서 친구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말투를 그대로 반영합니다. 또한, 이옥수 작가는 감정이 격해지는 장면에서도 욕설이나 과장된 표현 없이, 절제된 언어로 긴장감을 유지하며 문학적 품격을 잃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상 언어의 반복 사용은 특정 감정이나 상황을 강조하는 효과도 줍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이 반복해서 "그냥..."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부분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을 암시하면서, 감정의 억압과 표현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는 독자들이 직접 자신과의 경험을 떠올리며 공감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작가가 이런 일상적 언어 속에 문학적 여백을 남긴다는 점입니다. 즉, 말해지지 않은 것,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전달합니다. 이옥수 작가의 문장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는 청소년 문학에 필요한 현실성뿐 아니라 문학적 완성도까지 동시에 갖춘 보기 드문 구성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는 이옥수 작가 특유의 감정 중심 서술, 상징의 치밀한 활용, 그리고 현실감 있는 대화체를 통해 청소년기의 불안과 성장, 상실과 회복을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소설을 넘어, 독자 자신의 내면을 비춰보게 하는 거울이자 위로의 메시지로 작용합니다. 감성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문장을 통해 독자의 삶 속으로 스며드는 이옥수 작가의 문학 세계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겨울 기린을 보러 갔어』를 지금 다시 한 번 정독해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