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 재판의 날』은 동물이라는 비유적 설정을 통해 인간 사회의 모순과 권력 구조를 비판적으로 되짚는 현대 풍자문학이다. 이 작품은 고릴라가 판사로 등장하고, 다양한 동물이 피고 혹은 증인으로 법정에 서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법이란 무엇이며 정의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이 글에서는 『고릴라 재판의 날』을 요즘 가장 주목받는 풍자문학으로 소개하며, 그 속에 담긴 법정 서사의 구조와 윤리적 메시지를 분석해 본다.
고릴라 판사가 전하는 법의 아이러니
작품의 중심에 있는 고릴라 판사는 단순한 동물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인간 사회의 권위자, 심판자, 그리고 때로는 제도를 맹신하는 ‘기계적 존재’로 표현된다. 그의 몸집과 목소리는 권위를 상징하지만, 정작 판단 기준은 모호하거나 시대에 뒤처진 규범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현실 사회에서 법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비합리적 판결을 풍자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은 절차적으로는 ‘공정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법률 용어와 절차는 익숙하게 등장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고릴라와 주변 인물들은 각자의 이익과 감정에 좌우되어 있다. 작가는 이 구조를 통해 ‘법’이 과연 객관적인 정의 실현 도구인지, 아니면 지배 체계의 도구에 불과한지를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재판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죄목도 풍자적이다. 예컨대, 바나나를 훔친 원숭이, 무리를 이탈한 늑대, 자신의 색깔을 바꾼 카멜레온 등은 모두 현대 사회에서 규범을 어기거나 질문하는 존재들이다. 이들이 법정에서 겪는 과정은 그 자체로 ‘순응하지 않는 자에 대한 시스템의 반응’을 상징한다.
법정 소설을 변형한 서사 기법
『고릴라 재판의 날』은 법정소설이라는 장르의 전통적 틀을 전복한다. 일반적인 법정소설에서는 판결의 공정성, 진실의 추구, 정의의 실현이 주요한 서사축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이미 결정된 결과’에 ‘연기된 논리’를 덧붙이는 형식을 통해, 법이 가진 허구성과 제도화된 폭력을 드러낸다. 서사는 챕터마다 하나의 사건과 피고 동물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각각이 독립적이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거대한 재판 체계 속 이야기로 연결된다. 이러한 구조는 연작소설 형식을 취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고릴라 자신이 피고로 서게 되는 반전을 통해 완성된다. 이 반전은 풍자의 정점을 찍는 동시에, 독자에게 진정한 ‘재판의 대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법정 묘사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형식적이고 반복적이라는 점은, 법이 진실을 밝혀내기보다는 오히려 진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독자에게 읽는 과정 자체가 ‘재판을 목격하는 체험’이 되도록 유도한다.
윤리적 메시지와 현실적 적용
『고릴라 재판의 날』은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을 동물이라는 우화적 설정 속에 효과적으로 녹여낸다. 작품은 단순한 풍자를 넘어서 ‘윤리’란 무엇인지, ‘정의’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을 유도한다. 고릴라 판사는 겉보기에 정의롭지만, 그 정의는 늘 권력을 가진 자에게 유리하고 약자에게 불리하다. 이는 독자에게 ‘중립적 판단’이라는 개념이 과연 존재 가능한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작품은 또한 독자 스스로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성찰하게 한다. 우리는 법정의 고릴라인가, 피고 동물인가, 혹은 방청석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익명의 방관자인가? 이 같은 다층적 시점은 『고릴라 재판의 날』을 단순한 소설이 아닌, 윤리적 거울이 되게 만든다. 마지막 장에서는 고릴라 판사조차 법의 심판대에 오르며, 이 세계에서 절대적인 권위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 결말은 독자에게 강한 여운을 남기며, 지금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는 ‘정의의 모습’이 과연 얼마나 공정한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