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강석희 작가가 입시라는 절박한 현실 속에서 피어나는 청춘의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 청소년 소설입니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이 작품은 단풍처럼 찬란하지만 사라지는 순간의 감정, 그리고 모의고사라는 상징을 통해 반복되는 시험 속에 갇힌 10대들의 내면을 이야기합니다. 강석희 작가의 문체는 감정을 억지로 끌어내지 않고, 감정이 흘러나오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묘사력과 문학적 정서로 빛을 발합니다. 본문에서는 강석희 작가의 문체적 특징과, 청춘기의 감정을 어떻게 묘사하고 구조화했는지를 중심으로 해석해 보겠습니다.
일상어 속 정서를 담는 묘사력
강석희 작가의 문장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문체는 단순한 묘사를 넘어서 일상 언어 안에 정서를 농밀하게 담아내는 능력을 보여줍니다.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에서는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을 그대로 살리되, 그 안에 감정의 결을 끼워 넣는 방식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주인공 ‘시현’이 “그냥, 요즘엔 가만히 있는 게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겉보기엔 평범한 말 같지만 실제로는 무력감, 체념, 반복된 실패로 인한 정서적 피로감이 모두 스며 있습니다. 이런 평범한 말 한 줄이 소설 속에서는 심리적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독자는 그 감정선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타게 됩니다. 또한, 강석희는 감정을 묘사할 때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show, don’t tell) 방식에 능숙합니다. 주인공이 말없이 연습장을 찢거나, 시험지를 구겨버리는 장면처럼 행동 묘사를 통해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은 이 소설의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감정의 진폭을 극대화하는 데 기여합니다. 이는 작가가 10대 청소년들의 감정 기복과 생각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표현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누적하는 문장 구조
강석희 작가의 또 다른 문체적 특징은 감정을 단숨에 폭발시키지 않고, 누적시켜 감정 곡선을 조율한다는 점입니다.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감정을 ‘고조 → 정체 → 분출 → 수용’이라는 서사 구조 안에서 점진적으로 축적시킵니다. 이는 단순한 성장서사가 아니라, 정서적 리듬을 가진 문학적 장치입니다. 예컨대 소설의 중반부에 시현이 친구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혼자 학교를 빠져나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대사는 거의 없지만, 앞서 반복적으로 등장한 ‘책상에 웅크린 채 잠든 모습’, ‘깨진 시계’, ‘텅 빈 급식소’ 같은 장치들이 쌓이면서 감정의 농도가 진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인공이 스스로 입 밖에 내는 한마디 “이제, 모르겠다”는 그 누적의 절정이자 감정의 해방으로 작용합니다. 이처럼 강석희는 감정의 표현을 문장 단위에서가 아니라 장면 전체에서 설계합니다. 각 문장은 감정을 조각내지 않고, 이어지고, 반복되고, 확장됩니다. 이러한 구조는 청소년기의 불안정함과 감정의 연속성, 그리고 그것이 언젠가 무너지는 순간의 필연성을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독자는 감정을 단번에 ‘이해’하기보다는, 소설 속에서 ‘경험’하게 됩니다.
입시의 풍경을 정서의 배경으로 전환하다
『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입시라는 특수한 상황을 단지 배경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입시 자체가 인물들의 감정과 행동, 관계의 틀을 형성하는 장치로 활용됩니다. 즉, 시험과 결과라는 시스템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고립되고, 때로는 분노하며 관계를 단절합니다. 강석희 작가는 이러한 감정을 드러낼 때, ‘시험 결과’ 자체보다 그 결과를 바라보는 인물의 시선과 감정에 더 집중합니다. 시험을 망친 날, 친구와 마주 앉아 있는 장면에서 "넌 이번에도 잘했지"라는 짧은 질문 속에는 질투, 죄책감, 인정, 체념이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단 한 줄의 대사에도 복합적인 정서가 스며 있고, 작가는 그 말의 맥락과 표정, 침묵의 간격 등을 통해 입시 속 감정의 다층적 구조를 드러냅니다. 무엇보다도 강석희는 단풍이라는 계절적 상징과, 모의고사라는 반복적인 사건을 통해 청춘의 소멸성과 희망 사이의 모순된 감정을 형상화합니다. 단풍은 곧 떨어질 운명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답고, 모의고사는 성적을 위한 것이지만 때로는 인물 간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징적 배치는 작가가 청소년기의 감정을 얼마나 다각도로 이해하고 해석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단풍의 꽃말은 모의고사』는 단순한 입시소설이 아니라, 청춘기의 복합적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 정서 서사입니다. 강석희 작가는 과장된 감정보다는, 짧고 일상적인 문장 안에 감정의 깊이를 담아내며 독자에게 진한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 책은 입시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는 10대뿐 아니라, 그 시기를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 같은 문학 작품입니다. 입시의 끝에서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 속 문장을 한 줄씩 천천히 따라가 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