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설라 작가의 『메모리얼 향수 가게』는 향기를 매개로 기억과 감정을 회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감성 소설이다. 작품은 잊고 싶지만 잊지 못하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기억과 감정을 '향수'라는 매개를 통해 마주하게 한다. 이 글에서는 향기가 어떻게 문학 속에서 기억의 통로로 작용하고, 그 과정이 인물의 치유와 성장으로 이어지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향기라는 비언어적 기억 장치
향수는 시각이나 청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는 감각이다. 진설라 작가는 이러한 후각의 특성을 소설의 서사 구조 중심에 배치하며, ‘향수’를 통해 인물들이 과거의 특정 순간으로 돌아가는 장치를 설계한다. 『메모리얼 향수 가게』의 공간은 단순히 향수를 파는 곳이 아니라, 잊힌 감정을 되살리는 기억의 입구이며, 감정의 보관소다.소설 속 고객들은 향수를 요청할 때 “그때의 냄새”를 찾는다고 말한다. 그 향은 과거의 누군가를, 어떤 계절을, 혹은 어떤 슬픔을 떠올리게 한다. 이 장면들은 문학에서 후각이 감정 회복의 열쇠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한다. 작가는 향이라는 구체적인 감각을 감정의 열쇠로 사용하며, 독자에게도 개인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또한 향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그 기억이 현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성찰하게 만든다. 잊고 지냈던 사람, 회피했던 감정,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이 향기를 통해 다시 떠오르고, 그것이 치유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작가는 후각이라는 비언어적 기억 매개체를 통해 독자의 감각과 내면을 동시에 자극하며, 향이 단지 ‘냄새’가 아닌, ‘감정’이라는 의미로 재정의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억은 왜 향기로 돌아오는가
기억은 때로 사진보다, 말보다, 냄새로 더 선명하게 돌아온다. 『메모리얼 향수 가게』는 이 점을 문학적으로 구현하며, 잊고 살았던 기억들이 향기를 통해 선명하게 살아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상실의 경험을 안고 향수 가게를 방문한다. 사별, 이별, 후회, 미련 등 각기 다른 감정의 결이 ‘그 시절의 향기’를 통해 다시 현재로 호출된다.이 소설에서 기억은 단지 과거의 회상이 아니다.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에게 감정적 균열을 일으키며, 그 균열은 회복이나 성찰을 통해 다시 봉합되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향기는 트리거이자 해답이 된다. 작가는 독자가 인물의 기억을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의 기억도 되짚게 만드는 장치를 치밀하게 구성한다.향수가 과거를 단순히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거를 ‘지금 여기’로 불러내고, 그때 하지 못했던 말을 ‘지금’ 하게 만든다는 점이 이 소설의 정서적 깊이다. 이러한 방식은 문학이 시간과 감정을 연결하는 방식을 새롭게 제시하는 접근이며, 후각이라는 감각을 중심에 둔 소설로서 보기 드문 감정 몰입력을 제공한다.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잠재되어 있다가 특정 감각에 의해 되살아난다. 작가는 이를 향기로 구현하며, 모든 사람에게 기억의 문이 하나씩은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한다. 그 문은 평소엔 닫혀 있지만, 언젠가 어떤 냄새가 그 문을 다시 열게 된다.
향기로 치유되는 마음, 문학적 위로의 방식
『메모리얼 향수 가게』는 단지 기억을 상기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작품은 향기를 통해 인물이 자신의 감정을 해석하고, 잊고 지냈던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나는 치유의 과정을 그린다. 향수를 통해 되살아난 기억은 인물로 하여금 어떤 감정을 회피했는지를 깨닫게 하고, 그 감정을 다시 감당하게 만든다.이 소설은 그래서 기억과 감정을 단절된 과거로 남겨두지 않는다. 작가는 향을 통해 감정을 현재로 연결시키고, 그 감정을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인물이 성장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향수는 맞춤형으로 제작되며, 그 사람만의 기억, 감정, 스토리가 배합되어 향으로 구현된다.이러한 설정은 감정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치다. 같은 향이라도 사람마다 떠올리는 기억은 다르고, 그 기억이 전하는 메시지 역시 각자에게만 해당된다. 이는 문학이 독자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반영하는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진설라 작가는 향수를 치유의 도구로 기능하게 하며, 말로 다 하지 못한 감정이 향으로 번역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이러한 서사는 코로나 이후 상실과 불안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향기는 감정의 언어이며, 그 향기를 통해 사람은 다시 사랑하고,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