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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 책 기존 역사 자유의 기원 사상의 유산

by 달빛서재03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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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새벽의 책 표지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웽그로의 공저 『모든 것의 새벽(The Dawn of Everything)』은 인류 문명의 기원을 완전히 새롭게 정의한 책이다. 이 작품은 기존의 “문명=진보”라는 통념을 거부하며, 인류가 언제, 어떻게 불평등과 권력을 만들어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레이버는 고고학과 인류학의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인간은 단순히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과 상상력”으로 사회를 만들어온 존재라고 말한다. 『모든 것의 새벽』은 그야말로 “인류가 자유로웠던 시대”를 복원하는 혁명적인 역사서다.

인류는 언제부터 불평등해졌는가 — 기존 역사에 대한 반란

그레이버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인류사 서술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간은 원시적 공동체에서 국가로 ‘진보’했다고 믿지만, 『모든 것의 새벽』은 그 진보가 “허구적 서사”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고대 인류는 단순한 생존 집단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실험자였다. 도시가 생겨나기 전에도 사람들은 권력 구조를 만들었다가 스스로 해체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를 경험했다. 즉, 불평등은 필연이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그레이버는 고고학적 증거를 인용하며 말한다. “우리는 자유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자유를 포기했다.” 그 문장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향한 통렬한 경고다. 『모든 것의 새벽』은 문명의 역사를 직선적 발전이 아닌 ‘복수의 가능성’으로 제시함으로써, 인류가 다시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준다.

자유의 기원 — 권력 이전의 인간을 복원하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자유’에 대한 재해석이다. 그레이버는 인류의 초기 공동체에서 “이주할 자유”, “복종하지 않을 자유”, “관계를 바꿀 자유”라는 세 가지 형태의 자유가 존재했다고 말한다. 즉, 고대인들은 권위 없이도 사회를 운영할 수 있었던 존재였다. 이 주장은 근대 정치철학이 말하는 ‘자연 상태’ 개념을 뒤집는다. 홉스가 말한 ‘만인의 투쟁 상태’는 실재가 아니라, 문명이 만들어낸 공포의 허상이라는 것이다. 그레이버는 실제 고고학 사례—수천 년 전 북미 원주민의 평등 공동체나, 초기 도시의 비권위적 행정 구조—를 통해 이를 증명한다. 그의 주장은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것의 새벽』은 “다르게 살 수 있었다면, 지금도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 자유의 철학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이 어떤 형태의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지를 다시 묻는다.

인류학에서 정치로 — 그레이버가 남긴 사상의 유산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이미 『빚의 역사』로 잘 알려진 인류학자이자 활동가였다. 그의 학문은 언제나 현실 정치와 맞닿아 있었다. 『모든 것의 새벽』은 단순한 고고학 서적이 아니라, 정치적 선언문에 가깝다. 그는 “인류는 지배받지 않고도 협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이 책에서 증명하고자 했다. 공동체는 언제나 스스로의 형태를 선택할 수 있었고, 따라서 현재의 불평등 구조도 절대적인 운명이 아니다. 이 통찰은 현대 사회에서 조직, 권력, 제도에 순응하는 개인들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지금처럼’ 살아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의 새벽』은 과거를 통해 미래의 정치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책이다. 그레이버의 사후(2020년) 출간된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여전히 전 세계 인문학계에 깊은 울림을 남기고 있다. 그의 문장은 마치 선언처럼 들린다. “우리는 여전히 새벽에 있다.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모든 것의 새벽』은 인류의 시작을 새로 쓰는 동시에, 인간의 가능성을 다시 여는 책이다. 그레이버는 인류가 단 한 번도 단일한 길로만 걸어온 적이 없다고 말한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지금의 세상은 우리가 만든 것이며, 그렇다면 다시 만들 수도 있다.” 이 책은 역사를 공부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자유를 믿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새벽’을 보여준다. 결국 그 새벽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의식 속에서 다시 떠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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