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윤 작가의 『무해한 주연』은 관계 속에서 항상 한 걸음 물러서 있던 이들의 감정을 담담하게 풀어낸 감성 에세이입니다. 스포트라이트를 피하고 싶은, 하지만 사라지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조용한 공감과 단단한 위로를 건넵니다.
‘티 나지 않게 있는 사람들’의 감정
『무해한 주연』이라는 제목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현대인의 감정 구조를 정확히 관통합니다. 무해하다는 말은 다정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존재감을 줄이기 위한 방어적 전략이 되기도 합니다. 전자윤 작가는 자신을 “조연의 위치를 스스로 선택한 주연”이라고 소개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 서툰 사람들의 내면을 깊이 있게 탐색합니다. 이 책은 자기 자신을 중심에 세우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임에서는 말을 아끼고, 업무에서는 튀지 않게 움직이며, 친구에게도 한 번 더 맞춰주는 습관. 작가는 이것이 ‘선택’이자 ‘생존’이었다고 말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읽는 능력은 축복이 아니라 피로로 이어지기 쉬운 감정입니다. 전자윤의 문장은 조용합니다. 그러나 그 속엔 고요한 단단함이 있습니다. “나는 불편함을 만들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늘 내 마음은 제일 나중이었다.” 이 한 문장은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그것은 단순한 배려가 아니라, 자기감정의 지연을 통해 관계를 유지해 온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책은 계속해서 독자에게 묻습니다. “정말 내가 무해하기만 했던 걸까”, “무해함이란 이름 아래 내 감정은 얼마나 숨겨졌을까” 이런 질문은 단순히 ‘성격 유형’을 나누는 것이 아닌, 감정의 존재 방식을 재구성하는 작업입니다. 작가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사라지지 않아도 돼요. 조용한 감정도 감정입니다.”
‘무해한 척’ 하는 감정의 피로
전자윤 작가는 이 책에서 “무해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감정의 편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스스로를 조율하고, 표현을 걸러내고, 결국 침묵을 택하는 습관은 결국 내면의 피로로 이어진다고 말합니다. 『무해한 주연』은 바로 그 피로가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추적합니다.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려다 “과한 사람”으로 보일까 두려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갈등이 될만한 상황에서 먼저 물러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태도는 타인에게 ‘편한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지만, 자신에게는 ‘나를 해석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고 고백합니다. 책에는 반복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내가 진짜 괜찮은 건 아니었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이 문장은 자기를 숨기는 것에 익숙한 이들이 자주 겪는 내면의 모순을 드러냅니다. 우리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함으로써,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자기 자신에게 불편함이 되는 역설입니다. 전자윤은 그 피로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무해한 사람이 되는 대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조용히 권합니다. “내가 힘든 것을 말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아니다”는 작가의 말은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독자들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조연의 자리’에서 스스로를 받아들이는 법
『무해한 주연』의 가장 큰 미덕은, 스스로를 조연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이 책은 ‘튀어야 한다’, ‘표현해야 한다’는 자기 계발식 메시지를 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의 조용한 당신도 충분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전자윤은 말합니다. “주연이란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감정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다.” 조연처럼 살아온 자신의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그리고 조용히 감정을 돌보는 삶이 더 단단할 수 있음을 책을 통해 보여줍니다. 작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간직하는 방식, 타인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 사람의 깊이, 주목받기보다 기억되고 싶은 마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더 오래 남는 ‘무해하지만 강한 서사’라고 말합니다. 책을 덮는 순간 독자는 “나는 왜 내 감정을 말하지 못했을까”에서 “지금부터라도 말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나아갑니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 감정을 조용히 간직했던 날들도 분명 의미 있었다는 것. 『무해한 주연』은 그렇게 조용한 사람들의 감정을 꺼내주는 책입니다.『무해한 주연』은 말보다 감정이 앞섰던 사람들, 말보다 배려를 선택했던 이들에게 꼭 필요한 감정 에세이입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속에서, 조용히 감정을 꺼낼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하는 책. 이 조용한 문장을 통해 당신의 감정도 마침내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