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물 없는 수영장 책 감정의 결핍 유지되는 거리 무의식

by 달빛서재03 2025. 6. 2.
반응형

물 없는 수영장의 책 표지

김선정 작가의 『물 없는 수영장』은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내면은 결핍된 인물들이 등장하는 심리소설이다. ‘물이 없다’는 상징을 통해 작가는 감정의 공백, 관계의 단절, 무의식 속 침묵을 세심하게 포착하며, 독자에게 자기 내면을 돌아보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물 없는 수영장’이라는 공간이 품고 있는 상징성, 인물 사이의 관계의 균열, 그리고 말해지지 않는 감정이 흐르는 무의식 구조를 중심으로 이 작품을 해석한다.

상징: 감정의 결핍을 품은 ‘물 없는 수영장’

작품의 가장 인상적인 장치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물이 없는 수영장’이라는 공간이다. 일반적으로 수영장은 몸을 던지고 감각을 일깨우는 생기 있는 장소이지만, 김선정은 그 공간에서 ‘물’을 제거함으로써 기능 상실을 상징한다. 즉, 이 수영장은 더 이상 누군가를 담아주지 못하고, 감정이 흐르지 않는 장소다.수영장이라는 공간은 소설 속 주인공의 내면, 혹은 인간관계의 외형적 틀을 은유한다. 감정이라는 물이 비워진 채 껍질만 남은 공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주변을 배회하지만, 이미 감정을 잃은 채 기계적인 말과 행동을 반복한다. 김선정은 이 공간을 통해 현대인의 감정적 공허, 기능은 존재하지만 본질은 상실된 인간관계를 드러낸다.특히 인물들이 수영장을 중심으로 어색하게 모이고 흩어지는 장면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단면을 보여준다. 수영장은 침묵의 울림을 담는 무대이며, 말해지지 않는 감정이 회전하는 공간이다. 독자는 이 공간을 통해 인물들의 외적인 평정 속에 감춰진 내면의 결핍을 자연스럽게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일상 겉으론 정상적으로 유지되지만 정작 내면은 마르고 있는 것과 닮아 있다.

관계: 가까워지지 못하는 연결, 애써 유지하는 거리

김선정의 인물들은 누구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때로는 의도적으로,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감정을 숨기고 거리감을 유지한다. 이 소설이 특이한 점은, 관계가 겉보기에 문제없이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그 안에 진실한 소통이 없다는 점이다. 대화는 있지만 소통은 없고, 접촉은 있으나 감정의 교류는 없다.주인공은 오랜 친구 혹은 연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감정적 밀착보다는 감정의 지연과 회피를 선택한다.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하지 않고, 침묵이나 행동의 반복으로 전달하려 한다. 예를 들어, 같은 수영장을 여러 번 배회하지만 물이 없는 공간에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맴도는 장면은, 단절된 인간관계를 시각화하는 중요한 장면이다.이런 관계의 양상은 단순한 고립이나 냉담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해치지 않기 위해 유지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무례하지 않게, 상처 주지 않게, 하지만 그만큼 다가가지도 못하는 연결. 김선정은 이런 관계를 통해 감정과 감정 사이에 놓인 공기를 보여준다. 어떤 말은 해서는 안 될 것 같고, 어떤 말은 해도 닿지 않을 것 같은 그 거리. 작가는 그 침묵의 틈 사이에서 감정을 포착하고, 오히려 말보다 강하게 감정의 여운을 남긴다.

무의식: 말하지 않는 것이 말해주는 것

김선정의 소설은 항상 ‘말해지지 않는 것’에 집중한다. 『물 없는 수영장』 역시 표면적으로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등장인물은 일상을 반복하고, 특별히 큰 갈등이나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다. 하지만 그 안에서 계속해서 감정의 흔들림이 일어난다. 그것은 말보다 무의식 속 행동이나 반복 속에서 드러난다.등장인물들은 말을 아끼고, 표현을 절제한다. 하지만 반복되는 행동, 기묘한 시선, 공간 속에서 무언가를 찾거나 잃는 방식으로 감정이 스며든다. 작가는 감정의 전면적 폭발보다는, 정서적 진동에 가까운 방식으로 무의식을 보여준다.수영장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에피소드들 출입을 반복하는 발걸음, 수영장 바닥에 비친 흔적들, 거울을 보는 눈빛 모두는 인물의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이는 마치 독자가 심리 분석의 단서를 읽듯 텍스트를 따라가도록 만든다. 무의식은 설명되지 않지만, 문장 밖에서 흐르고 있다.김선정의 글쓰기는 ‘정리된 감정’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기며, ‘감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소설은 감정을 해석하려는 시도 자체가 하나의 여백이자 독서의 핵심임을 상기시킨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읽은 후 생각이 멈추지 않는 책이 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