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재인 작가의 『범람주의보』는 제목처럼 넘쳐흐르는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된 강렬한 청춘 서사입니다. 이 작품은 불안정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내면을 세밀하게 조명하며, 감정이 어떻게 쌓이고 터지는지를 문학적으로 풀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범람주의보』에 등장하는 감정의 폭발, 그리고 그 감정을 둘러싼 서사 흐름을 중심으로 작품의 핵심 메시지와 문학적 특징을 분석합니다.
감정의 축적과 폭발, 현대 청춘의 정서
『범람주의보』는 감정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체를 구조화된 문학으로 구현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유하’는 일상 속 무력함과 반복되는 실망, 그리고 감정의 외면을 경험하는 평범한 청춘입니다. 하지만 이 평범함 속에 감정은 끊임없이 축적되고, 어느 순간 '범람'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이는 현대 사회의 청춘들이 경험하는 정서적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입니다. 설재인 작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물의 내면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합니다. 유하가 겪는 작고 반복적인 실망 예를 들어 기대했던 문자가 오지 않거나, 약속이 취소되거나,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을 때의 그 작은 감정들은 어느 순간 하나의 거대한 파도로 변합니다. 이러한 감정의 물리적 전환은 ‘범람주의보’라는 제목을 통해 예고되며, 서사 전체에 걸쳐 끊임없는 긴장감을 부여합니다. 이 소설이 특별한 이유는, 감정의 폭발이 단지 주인공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작가는 사회 구조, 인간관계, 경제적 불안 등 외부 요인과 내면 감정이 서로 얽혀 있다는 점을 통해, 개인의 감정이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의 산물임을 보여줍니다. 이는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지점입니다.
파편적인 구조 속 흐름의 일관성
『범람주의보』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습니다. 시간 순서대로 흘러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유하의 기억, 상상, 현실이 뒤섞이며 전개됩니다. 이 파편적인 구조는 감정의 비논리적 흐름과도 닮아 있어, 독자에게 더 진실된 정서를 전달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감정은 논리적으로 진행되지 않듯, 이 소설의 서사도 ‘느낌’에 따라 움직입니다. 각 장면은 마치 짧은 에세이처럼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 때론 몽환적이고, 때론 일기처럼 내밀한 문체는 유하의 불안정한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구조는 처음에는 낯설 수 있지만, 익숙해질수록 감정의 층위를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비’와 ‘물’의 이미지비 오는 거리, 물에 젖은 신발, 범람한 하수도는 이야기의 테마를 시각화하고 감정의 과잉 상태를 상징합니다. 설재인 작가는 이러한 자연 이미지를 활용해 감정을 묘사할 때도 직유보다는 상징을 선택하며, 감정이 더 깊게 독자의 감각에 파고들게 만듭니다. 이처럼 비정형적 구조와 상징적 묘사가 조화를 이루며, 『범람주의보』는 단순한 감정서사를 넘어서 감각의 서사로 확장됩니다. 독자는 유하의 내면을 따라가는 동시에, 자신의 감정 또한 되돌아보게 됩니다.
불안한 시대의 목소리, 감정의 사회성
이 작품이 감정에 대해 말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 이유는, ‘불안’이라는 감정이 단지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현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유하가 느끼는 불안은 특별한 사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지속되는 불확실성과 고립된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이 배경은 오늘날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정서이기도 합니다. 설재인 작가는 이러한 불안을 외면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 보고, ‘폭발’을 피하지 않습니다. 이는 독자에게도 일종의 감정적 해방을 제공하며, 억눌렸던 감정이 터져 나올 수 있는 문학적 통로를 제시합니다. 작중에서 인물들은 감정을 감추거나 외면하는 대신, 끝내 마주합니다. 유하 역시 누군가를 미워하고, 울고, 스스로를 비난하다 결국 작은 변화에 도달합니다. 그 변화는 사회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이 바로 『범람주의보』의 메시지입니다 감정은 숨기는 것이 아니라,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 이러한 메시지는 감정이 무질서하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때론 가장 진실된 힘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는 문학이 줄 수 있는 위로 중 가장 깊은 형태이며, 오늘날 감정조차 효율성과 논리로만 평가되는 시대에 던지는 강한 반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