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은미 작가의 『아홉 번째 파도』는 일상과 감정, 그리고 회복의 서사를 잔잔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파도’라는 상징을 통해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부서지고 다시 일어서는지를 보여준다. 최은미는 시대의 불안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회복의 문학’을 완성한다. 『아홉 번째 파도』는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파도 속에서 살아남는 인간 — 상징의 시작
『아홉 번째 파도』의 제목은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가 아니다. ‘아홉 번째 파도’는 거듭되는 실패와 절망 끝에 찾아오는 마지막 기회를 의미한다. 바다의 파도가 여덟 번 부서지고 아홉 번째에 비로소 완전한 형태로 밀려온다는 속설처럼,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이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주인공은 한때 모든 것을 잃은 인물이다. 가족, 관계, 그리고 자신에 대한 확신까지. 하지만 그는 바닷가 마을에서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면서 조금씩 변한다. 파도 소리는 그의 기억을 흔들고, 그 속에서 그는 잊었던 감정들을 되찾는다. 최은미는 자연을 인간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데 능숙하다. 바다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메타포다. 파도는 인물의 불안을 삼키고, 동시에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수평선 위의 움직임처럼 표현한다. 멈추지 않지만, 반복되는 그 움직임 속에 회복의 리듬이 숨어 있다.
상처와 회복 — 최은미가 그리는 인간의 윤리
『아홉 번째 파도』의 핵심은 상처의 미학이다. 최은미의 인물들은 늘 불완전하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그녀의 문학이 빛나는 지점이다. 이 소설에서 회복은 기적처럼 찾아오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통과’하는 과정에서만 가능하다. 주인공은 관계의 실패를 반복하며 자신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그를 다시 인간으로 만든다. 최은미는 여기서 ‘진정한 회복은 타인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이 작품의 뛰어난 점은, 상처를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현실적인 감정의 진폭을 그대로 보여준다. 불안, 분노, 후회, 그리고 아주 작지만 진심 어린 용서. 그런 감정들이 모여 파도의 리듬처럼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최은미는 이 소설을 통해 “무너진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라는 믿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여덟 번의 파도에 부딪혀도, 결국 아홉 번째에 일어선다.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이며, 이 소설이 전하는 윤리다.
변화의 시대 속 문학 — 최은미의 새로운 시선
『아홉 번째 파도』는 시대와 개인의 감정이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작가는 코로나 이후, 관계의 단절과 고립의 감각을 시대적 배경으로 삼는다. 하지만 그 배경 속에서도 인물들은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향해 손을 내민다. 최은미는 이번 작품에서 이전보다 훨씬 담백한 문체를 사용한다. 불필요한 수식어를 줄이고, 감정의 결만 남긴 문장은 마치 파도의 잔향처럼 오래 남는다. 그 절제된 문체 속에는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이 깃들어 있다. 그녀의 이전 작품들이 사회의 구조적 폭력이나 세대 간의 단절을 다루었다면, 『아홉 번째 파도』는 그 이후의 이야기다. 상처 이후, 인간이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이 작품은 또한 ‘공감의 문학’이다. 최은미는 독자에게 직접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작고 진심 어린 행동을 통해 회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것은 거대한 구원보다 현실적인 치유다. 결국 『아홉 번째 파도』는 변화의 시대 속에서도 인간이 여전히 서로를 통해 살아간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그것이 최은미가 우리에게 전하는, 조용하지만 강한 희망의 메시지다.『아홉 번째 파도』는 무너짐과 재생, 그리고 인간의 회복을 다룬 최은미 문학의 결정체다. 작가는 파도의 반복을 통해 삶의 리듬을그리고 인간의 감정 속에 숨겨진 복원력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절망의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인간의 서사이며, 우리가 여전히 서로의 존재를 믿을 이유를 말한다. 변화의 시대에, 『아홉 번째 파도』는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몇 번째 파도에 서 있습니까 “라는 질문을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