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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 책 세상의 정답 앤서를 만들어가는 시간 내가 되기까지

by 달빛서재03 202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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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민 작가의 『앤서』는 진로 고민, 자기 정체성의 혼란, 부모와 교사의 기대, 친구와의 거리감 등 현실적인 문제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응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청소년의 내면 성장기를 그린 소설이다. ‘앤서’라는 제목은 단순히 해답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정해진 정답이 아닌, 각자의 삶에 대한 ‘응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말문을 열지 못하고 망설이는 청소년들의 복잡한 감정에 깊이 다가서는 작품이다.

세상은 정답을 요구하지만, 나는 아직 묻고 있는 중이다

주인공 ‘지안’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다. 성적은 나쁘지 않고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도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매일같이 쏟아지는 질문들이 있다. 진로를 정했는지, 어떤 과를 희망하는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지안은 이 질문들에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가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게으르거나 무책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따라가며, 지안이 느끼는 막막함과 죄책감을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그는 자주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걸까”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침묵은 무능력이나 무관심의 표현이 아니다. 아직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정직한 망설임이다. 『앤서』는 이러한 상태를 ‘나약함’으로 보지 않고, 청소년기 감정의 깊은 한 단면으로 정당하게 바라본다. 학교와 가정, 사회는 빠르게 결정을 요구하고 무언가를 선택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처럼 압박한다. 그러나 작가는 ‘질문 중인 상태’를 멈춤이 아닌 성장의 중요한 시기로 해석하며,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지안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정답 대신, 나만의 앤서를 만들어가는 시간

지안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조심스럽고 무던한 태도를 보인다.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건네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그는 점점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게 되고, 누군가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대신 그저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 노력한다. 이런 태도는 겉보기엔 성숙해 보일 수 있지만, 내면에서는 표현되지 못한 감정이 쌓이고 감정적 거리감이 커지게 된다. 소설은 지안이 이런 ‘비응답의 상태’에서 ‘응답을 시도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진로 탐색 수업에서, 우연히 만난 선생님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오래 알고 지낸 친구와의 갈등을 겪으며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충동을 느낀다. 물론 그 시도는 서툴고 어색하며, 때로는 실패로 끝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체가 ‘응답’의 시작이며, 자기감정을 인식하는 중요한 과정임을 작가는 강조한다. 작품에서 앤서란 완벽한 해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감정, 생각, 상태를 정직하게 표현하려는 태도이다. 지안은 점차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생각하고 있다”는 말조차 진심으로 할 수 있게 되며, 그 말들 속에서 처음으로 ‘나’를 발견하기 시작한다.

대답할 수 없던 내가, 말할 수 있는 내가 되기까지

『앤서』의 마지막은 명확한 해답을 보여주지 않는다. 지안이 어느 대학을 선택했는지, 어떤 직업을 가지기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가는 오히려 지안이 다시 질문을 받고도 피하지 않고 말할 수 있게 된 점에 집중한다. “모르겠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생각 중”이라고 대답할 수 있는 여유, 그리고 누군가에게 솔직하게 “힘들다”라고 털어놓을 수 있는 감정의 확장. 이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는 ‘앤서’이며, 지금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진짜 성장의 징후다. 청소년기의 진로 고민은 단지 진학이나 직업의 문제가 아니다. 그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드러낼 수 있는 언어를 갖추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앤서』는 이를 반복되는 질문과 응답의 구조로 풀어내며, 묻고, 멈추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말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담는다. 이 소설은 진로를 정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괜찮다,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라고 말해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언젠가 그 감정에 정직하게 응답하려는 자세임을 조용히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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