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작가의 『엄마의 말 연습』은 단순한 육아 에세이를 넘어선, 돌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감정적 훈련의 기록이다. ‘엄마’라는 역할이 하루아침에 주어졌지만, 그 역할을 감당할 언어는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 책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말의 실수, 감정의 오해, 돌봄의 무게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엄마’라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을 다시 배우게 하는 따뜻한 문학적 시도다.
‘엄마’는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엄마의 말 연습』은 육아의 기록이 아니다. 오히려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언어적 갈등과 감정의 균열, 그리고 그것을 메우려는 일상의 반복에 대한 성찰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자신이 자녀에게 처음 던진 말들이 얼마나 서툴고, 때로는 폭력적이었는지를 솔직히 고백한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됐다는 걸, 아이가 잠든 밤에야 알았다.” 이런 문장들은 육아를 해본 독자라면 누구나 가슴을 치며 공감할 수밖에 없다. 말은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지만, 때론 말이 감정을 가리고 왜곡하기도 한다. 윤지영은 말이라는 도구가 돌봄이라는 감정에 다가가는 데 얼마나 조심스러워야 하는지를 묘사한다. 작가는 엄마가 되면서 ‘사람 대 사람’의 말이 아닌 ‘엄마 대 아이’라는 위계 속 말투에 익숙해진 자신을 자주 자책한다. 이 책은 그런 자책으로부터 도망가지 않고, 말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한 연습의 기록이다. 특히 아이와의 말싸움, 감정을 참지 못해 외쳤던 순간들, 그리고 그 이후의 침묵은 이 책에서 가장 진실된 감정의 장면으로 다가온다. ‘엄마’라는 단어는 이 사회에서 너무 쉽게 호출되지만, 그 단어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어보다 훨씬 복잡한 내면을 지닌 존재다. 윤지영은 바로 그 복잡함을 회피하지 않고 꺼내어 보여준다. 그녀에게 엄마가 된다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 감정을 연습하고, 실패하며, 다시 돌아가는 순환의 과정이다.
돌봄은 감정의 언어를 요구한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들은 아이와의 직접적인 갈등 상황이 아니라, 그 갈등 이후에 혼자 남은 엄마의 독백들이다. 말로 상처를 준 다음 날, 아이는 아무렇지 않게 “엄마, 놀자”라고 말하지만, 작가인 엄마는 자신의 말이 아이 마음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 계속해서 고민한다. 윤지영은 돌봄이란 행동이 아니라 감정의 언어라고 말한다. 아이를 안아주는 손보다,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보다, 아이에게 건네는 말이야말로 돌봄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그는 말을 더듬고, 문장을 고치며, 매일같이 언어를 연습한다. ‘말’이라는 주제는 이 책을 단단하게 관통하는 구조다. 아이에게 “그만해”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속에 담긴 감정은 분노인지, 단념인지, 두려움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이 쓴 문장들을 다시 읽고, 말했던 상황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어떤 감정으로 그 말을 했는지 재해석하는 과정 자체를 글로 남긴다. 돌봄이란 누군가를 챙기는 행위가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다룰 준비가 되어 있다는 자기 선언이다. 그리고 그 선언은 말이라는 형식으로 실현된다. 이 책은 바로 그 과정을 보여주는 감정 훈련의 텍스트다. 윤지영의 말투는 서툴지만 솔직하고, 단정하지 않지만 진심이 담겨 있다. 그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위로가 되는 이유다.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의 기록
『엄마의 말 연습』은 결국 한 여성이 엄마로 살아가게 된 시간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처음엔 자기만의 시간이 없어진 현실에 당황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도 자신의 존재가 점점 옅어지는 감각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 책에서 그 감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감정을 정확히 기록하고, 감정을 언어화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되찾아간다. 엄마가 되는 일은 단순히 자녀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언어 체계를 익히는 일이다. 감정을 감추지 않되, 상처 주지 않게 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며, 자신을 소거하지 않고도 아이와 함께 존재하는 법을 연습하는 시간이다. 윤지영은 이 과정을 일기처럼, 그러나 날카로운 통찰로 기록해 낸다. 그녀의 글은 엄마로서의 고민을 넘어, 모든 돌봄 노동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적 감정을 담고 있다. 감정은 통제할 수 없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말하느냐는 연습할 수 있다는 신념이 이 책을 이끌어간다. 그래서 이 책은 육아서가 아니고, 감정의 기술서이자 언어 훈련의 안내서라고 볼 수 있다.『엄마의 말 연습』은 “어떻게 말할 것인가”를 통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말이 돌봄의 방식이 되고, 감정이 언어로 건너가는 순간을 윤지영 작가는 탁월하게 포착해낸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매일 말의 실패 속에서 다시 말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며, 이 책은 그 연습의 전 과정을 독자에게 고백하듯 펼쳐 보여준다. 말에 지치고, 감정이 무뎌진 이들에게 이 책은 다정하고도 단단한 언어의 힘을 상기시켜 줄 것이다.윤지영 작가의 『엄마의 말 연습』은 단순한 육아 에세이를 넘어선, 돌봄의 언어를 배우기 위한 감정적 훈련의 기록이다. ‘엄마’라는 역할이 하루아침에 주어졌지만, 그 역할을 감당할 언어는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 책은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겪는 말의 실수, 감정의 오해, 돌봄의 무게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엄마’라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삶을 다시 배우게 하는 따뜻한 문학적 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