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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거북이 펜션 상실의 고통 거북이 펜션 느림의 미학

by 달빛서재03 2025.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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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거북이 펜션의 책 표지

이광 작가의 『여기는 거북이 펜션』은 상실과 회복,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관한 이야기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강선영과 오랫동안 아픈 어머니를 간병해 온 신재하가 우연히 구례의 한 펜션에서 만나 서로의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마음의 쉼표를 찾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독자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상실의 고통을 품은 두 사람의 만남

강선영은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었다. 평범한 일상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고립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주변의 위로는 공허하게 들리고, 그녀는 오직 시간만이 자신을 살려줄 거라 믿었다. 그런 선영은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구례로 향한다. 그곳에는 고모가 운영하던 ‘거북이 펜션’이 있었다. 하지만 고모는 허리 수술로 입원하게 되었고, 펜션은 잠시 문을 닫은 상태였다. 낯선 시골 마을, 닫힌 문 앞에서 선영은 처음으로 긴 숨을 내쉰다. 이곳에서만큼은 아무도 자신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편안했다. 그 무렵 신재하는 8년 동안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를 돌보다가 마지막 순간을 함께한 인물이다. 그 역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었다. 간병이 끝난 자리엔 텅 빈 일상과 무력감만 남았다. 도시의 공기 속에서는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떠난 구례에서 그는 우연히 거북이 펜션을 찾게 된다. 이 두 사람의 만남은 운명처럼 잔잔하게 시작된다. 서로의 사연을 굳이 묻지 않아도, 상대의 눈빛만으로 고통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말 대신 침묵으로, 위로 대신 동행으로 그들은 서로를 이해해 나간다. 작가는 인간의 상처가 누군가의 온기를 통해 서서히 회복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거북이 펜션, 상처가 머무는 공간

‘거북이 펜션’은 작품의 중심 무대이자 하나의 상징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 오직 이곳만은 느리게 시간이 흐른다. 펜션은 더 이상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지친 사람들이 머물며 자신을 회복하는 안식처가 된다. 선영은 고모의 병원 입원으로 비워진 펜션을 보수하고 새롭게 단장한다. 낡은 창문을 닦고, 오래된 가구를 손보며 공간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다. 그녀는 재하와 상의 끝에 펜션을 ‘북스테이’로 바꾸기로 한다. 카페와 책방이 함께 있는 공간, 사람들이 쉬면서 책을 읽고,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거북이 펜션은 이제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한다. 여행 중 들른 손님, 혼자 글을 쓰러 온 작가, 혹은 잠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은 직장인 등 다양한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모두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펜션의 따뜻한 공기 속에서 그들은 조금씩 자신을 회복한다. 선영과 재하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이 누군가의 쉼터가 되고 있음을 깨닫는다.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만들어낸 공간은 결국 다른 이들의 상처까지 품어주는 곳이 된다. 작가는 거북이 펜션을 통해 함께 아파하고, 함께 회복하는 공동체의 힘을 조용히 전한다.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느림의 미학

시간이 흐르면서 펜션은 점점 활기를 되찾는다. 선영과 재하는 손님들이 떠난 자리마다 새로운 기억을 쌓는다. 처음엔 그저 도망치듯 머물렀던 공간이, 이제는 삶의 이유가 된다. 선영은 펜션을 꾸리며 잊고 있던 자신을 되찾는다. 부모를 잃은 상실감 속에서도 여전히 누군가를 위로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단단하게 만든다. 재하 또한 오랜 간병 끝에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자신도 다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음을 느낀다. 이광 작가는 이들의 변화를 통해 회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느림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때, 비로소 삶의 의미가 드러난다. 거북이 펜션의 하루는 언제나 단순하다. 아침에 커피를 내리고, 오후엔 책을 읽으며, 해질 무렵이면 서로의 하루를 나눈다. 하지만 그 평범한 하루 속에서 인물들은 ‘살아 있음’의 감각을 다시 느낀다. 이 소설은 고통을 없애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회복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워준다.

『여기는 거북이 펜션』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를 치유하는 이야기다. 강선영과 신재하가 만들어낸 펜션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무대다. 작가는 빠름의 시대 속에서 잊힌 ‘느림의 가치’를 복원하며,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새롭게 묻는다. 독자는 책을 덮고 나서도 따뜻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나아가는 삶, 그것이 진정한 행복임을 이 작품은 담담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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