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정경 작가의 『열다섯에 곰이라니』는 독특한 설정과 상징을 통해 청소년기의 정체성과 감정의 혼란을 날카롭게 포착한 작품입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갑자기 곰으로 변한다는 판타지 설정을 통해, 열여덟이라는 불안정한 시기의 내면을 은유적으로 그려내며 독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이 글에서는 곰 변신이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청소년기의 자아 정체성, 사회적 시선, 그리고 문학적 비유로서의 가치에 대해 살펴봅니다
판타지 속 곰, 열여덟의 혼란을 담다
『열다섯에 곰이라니』의 가장 강렬한 인상은 주인공 '한수연'이 어느 날 아침, 곰이 되어 깨어나는 장면입니다. 작가는 이 낯설고 충격적인 설정을 통해, 성장기 청소년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효과적으로 표현합니다. 열여덟이라는 시기는 신체적, 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는 시기로, 본인을 스스로 낯설게 느끼거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곰으로의 변신은 바로 이 혼란과 단절의 상징입니다. 수연은 곰이 된 자신을 인정하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냅니다. 이는 많은 청소년이 겪는 ‘나와 사회 사이의 괴리감’을 대변합니다. 어른이 되기엔 아직 미숙하고, 아이로 남기엔 너무 큰 책임과 기대를 받는 이 시기의 모순은, 곰이라는 존재를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곰은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니며, 야성적이면서도 따뜻함을 지닌 존재입니다. 수연은 이러한 경계적 존재가 되면서, 스스로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깊이 고민하게 됩니다. 작가는 이처럼 ‘변신’이라는 전형적인 판타지 소재를 통해 현실의 복잡한 감정과 갈등을 은유화함으로써, 청소년기의 심리를 매우 입체적으로 포착해 냅니다.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서, 판타지가 내면의 진실을 담아내는 문학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는 점에서 이 작품은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정체성과 타인의 시선, 그 사이에서의 방황
『열다섯에 곰이라니』에서 중요한 주제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자아입니다. 수연은 곰이 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봐 극도로 불안해하며, 친구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이는 많은 청소년들이 겪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지 못하는 두려움과도 닮아 있습니다. 청소년기는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로, 친구, 가족, 학교, 사회의 시선이 자신의 가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수연은 자신이 곰이라는 이유로 ‘이상한 존재’, ‘비정상’, ‘무서운 존재’로 인식될까 두려워합니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규범이나 외모, 성적 등으로 인해 받는 편견과 압박을 상징합니다. 작가는 이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의 기준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오는 갈등을 날카롭게 그려냅니다. 이 소설은 곰이 되었다는 비정상적 현상을 다루지만, 그 속의 감정은 지극히 현실적입니다. 외모에 대한 불안,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사람이 없을 것 같은 두려움, 스스로를 설명할 언어가 없어 침묵하게 되는 상황 등은 많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줍니다. 특히 수연이 곰의 모습으로도 자신과 소통하려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변화하는 과정은, 타인과의 진정성 있는 연결이 자아를 회복하게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판타지를 넘어서 ‘연결’과 ‘이해’의 가치를 되새기게 합니다. 결국 수연은 곰이라는 외피 속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점차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며, 이 과정은 많은 청소년 독자에게 ‘나답게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판타지라는 장르가 전하는 현실의 울림
추정경 작가는 『열다섯에 곰이라니』에서 판타지 장르를 택하면서도, 현실과의 접점을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곰으로 변하는 설정은 비현실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오히려 현실보다 더 진실하게 다가옵니다. 이는 판타지가 독자의 심리와 정서를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문학적 가치를 가집니다. 작품의 배경은 일상적인 학교와 가정, 친구 관계로 구성되어 있어 현실감이 강하고, 곰이라는 특수 상황이 극적인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판타지를 읽고 있음에도 ‘나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또한, 곰은 단지 육체적 변형이 아니라, 열여덟이라는 시기 자체의 혼란, 감정의 기복, 자아 분열 등의 상징으로 기능합니다. 추정경은 이를 통해, 판타지가 단순한 탈출이 아닌,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는 창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 독자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곰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또는 아직도 곰 같은 부분을 안고 살아가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단순히 ‘변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아를 찾아가는 인간의 여정 그 자체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열다섯에 곰이라니』는 추정경 작가 특유의 섬세한 시선으로 청소년기의 혼란과 성장, 그리고 자아 정체성을 판타지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곰 변신이라는 독특한 설정은 현실의 갈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며, 독자에게 깊은 감정의 울림을 남깁니다. 성장과 이해, 자기 수용의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을 통해, 청소년과 어른 모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