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민 작가의 『열 살, 살 우리는』은 초등학생의 관계와 감정을 사실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이 작품은 복잡한 서사가 아닌,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아주 작고 사소한 사건들이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큰 의미와 감정의 진폭을 가지는지를 섬세하게 담아낸다. ‘살’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나이를 뜻하는 수사일 뿐 아니라, 열 살 무렵 아이들이 경험하는 관계, 감정, 실수, 화해, 용기, 이해와 같은 ‘살아 있는 마음들’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단어로도 읽힌다. 작품 속 아이들은 특별한 영웅도, 특별한 사건도 겪지 않지만, 스스로를 지키고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며 진짜로 자란다. 『열 살, 살 우리는』은 감정 표현, 우정의 의미, 그리고 삶의 기본적인 태도를 배우는 성장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초등학생의 교실 안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작품의 무대는 초등학교 교실과 학교 주변, 동네 골목, 아이들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들이다. 누군가는 평범하다고 느낄 수 있는 배경이지만, 아이들에게 이 공간들은 감정이 요동치고 세상이 뒤바뀌는 ‘현장’이다. 친구가 내 말을 무시했을 때 느끼는 외로움, 숙제를 안 해와서 혼날까 봐 조마조마한 아침, 나도 모르게 던진 말에 친구가 울어버렸을 때 느끼는 죄책감. 이런 감정들은 어른들이 보기엔 작아 보여도, 아이에게는 세상을 구성하는 전부처럼 느껴진다. 문경민 작가는 이런 감정들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묘사하지 않고, 아이의 시선에서 사건을 해석하고 감정을 정당하게 바라본다. 작품 속 아이들은 어른처럼 말하거나, 인위적으로 교훈적인 태도를 갖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언어로, 그들의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으며 자연스럽게 성장의 단계를 밟아간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아이들의 ‘눈빛’, ‘표정’, ‘말 없는 침묵’까지도 이야기의 중심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언제나 말로 표현되지는 않으며, 그럼에도 누군가는 그 감정을 읽어내려 애쓰고, 또 누군가는 말할 용기를 조금씩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기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조심스럽게 이해하기 시작한다.
감정을 ‘느끼는 법’보다 ‘표현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
열 살은 감정이 격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지만, 그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언어는 아직 부족하다. 『열 살, 살 우리는』은 이 과도기의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한다. 작은 오해가 큰 다툼이 되고, 상처를 입고도 말하지 못해 마음속에 쌓이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지 못해 우정이 멀어지는 순간들이 펼쳐진다. 작품은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감정을 단순히 ‘느끼는 것’을 넘어, 적절히 표현하고 조절하며 관계 속에서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성장의 흐름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친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만, 처음에는 그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다 자신이 오해했음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다시 말을 건다. 또 다른 인물은 실수로 친구를 놀리게 되고, 그 죄책감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런 에피소드들은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아이들이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그 감정을 주고받는 훈련을 하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이야기 전반에 흐르는 ‘감정 문해력’은 현대 초등교육에서도 중요한 키워드다. 작품은 이 문해력을 설명이나 강요가 아닌, 이야기 속 자연스러운 흐름을 통해 내면화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아이가 친구에게 “그때 속상했어”라고 말하는 순간은, 그 자체로 작지만 위대한 감정 표현의 성공이다.
진짜 우정은 거리를 좁히기보다, 서로를 기다려주는 데서 시작된다
『열 살, 살 우리는』의 주인공들은 우정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다. 그들은 친구를 좋아하면서도 질투하고,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해하고, 함께 있고 싶지만 표현하지 못해 등을 돌리기도 한다. 이러한 감정은 어른의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는 복잡한 구조를 지닌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단순화하거나 설명적으로 풀지 않는다. 대신 아이들의 우정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조정되고 만들어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여러 날이 걸리고, 누군가는 먼저 다가가는 친구를 보고 조금씩 마음을 연다. 이 소설은 그런 감정의 시간차와 리듬을 존중한다. 특히 우정이란 빠르게 친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줄 때까지 기다려주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일관되게 전달된다. 우정은 감정이 일치하는 상태가 아니라, 다른 감정을 가진 두 사람이 그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함께 머무르는 힘이다. 작품 속 아이들은 그렇게 천천히 친구가 되어가며,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법,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배움은 시험이나 과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성장의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