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세계 작가의 『옥상에서 기다릴게』는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행위를 통해 이별, 우정, 감정, 그리고 성장을 섬세하게 다루는 감성소설입니다. 감정의 표현이 점점 억제되는 시대 속에서, 이 작품은 조용하지만 깊은 방식으로 “기다림”이라는 감정을 소환합니다. 특히 2024년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는 빠르게 변하고 잊히는 일상에서 멈춰 서서 감정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입니다.
이별 이후에도 남는 감정의 결
이 소설은 어떤 사건의 ‘끝’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를 옥상에서 기다립니다. 이별의 이유도, 상대방의 행방도 모호합니다. 그러나 작가는 의도적으로 설명을 생략합니다. 대신 그 빈 자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채웁니다. 독자는 결말이 아닌 과정을 따라가며 감정의 결을 느낍니다.한세계 작가는 ‘감정을 견디는 이야기’를 펼칩니다. 관계가 끝난 후 대부분은 잊거나, 미워하거나, 외면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러한 전형을 따르지 않습니다. 기다림이라는 행위는 사랑과 우정, 미련과 용서의 감정이 한데 엉킨 복합적인 상태입니다. 주인공은 상대방을 원망하기보다는,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며 묵묵히 시간을 보냅니다.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의 결’입니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심리는 과거를 소환하고, 그 기억 속에서 자신을 반추하게 합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더라”, “왜 나는 그때 화를 냈을까”, “그 애는 내 마음을 몰랐을까” 이러한 질문은 독자의 마음에도 잔잔한 물결을 일으킵니다. 이별은 단순히 끝남이 아니라, 새로운 감정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이 작품은 말합니다.
우정과 거리의 미묘한 온도
『옥상에서 기다릴게』에서 등장하는 두 인물의 관계는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습니다. 친구일 수도, 연인일 수도, 혹은 그 사이 어딘가일 수도 있습니다. 한세계 작가는 이 모호함을 의도적으로 유지함으로써 관계의 본질을 더욱 입체적으로 드러냅니다.현대 사회는 관계를 명확히 구분하고 규정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 인간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이 소설의 두인물은 ‘사이’에서 머뭅니다.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지만, 그것이 반드시 소유하거나 정의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거리감은 오히려 관계의 깊이를 유지하는 방법이 됩니다.특히 ‘옥상’이라는 장소는 상징적으로 작용합니다. 옥상은 도시의 가장자리,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공간입니다. 누군가와 만나기 위해 일부러 올라가야만 하는 장소. 이 점은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 위해선, 한 걸음 더 올라가야 하고, 내려와야 합니다. 작가는 이 상징을 통해 ‘기다림’의 공간적 의미를 부여하며, 우정이란 감정이 얼마나 섬세하고 복잡한지를 묘사합니다.또한, 이 소설은 관계의 공백을 포착하는 데 탁월합니다. 말하지 못한 감정, 이해받지 못한 행동, 모호한 경계선에서 생기는 오해와 침묵은 독자의 경험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한세계 작가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은 것’임을 보여줍니다.
성장: 감정의 무게를 감당하는 법
『옥상에서 기다릴게』는 단순히 감성적인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이 작품은 감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감정을 정리하거나 없애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감정을 받아들이는 것, 즉 감정의 무게를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핵심임을 보여줍니다.주인공은 기다림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과거의 자신과 화해합니다.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성장은 사건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드라마틱한 전개도, 화려한 변화도 없습니다. 오히려 매우 조용한 상태에서 감정이 점차 정리되고, 사람은 조금씩 단단해집니다.이 작품은 특히 20~30대 독자에게 깊은 공감을 줍니다. 정체성 혼란, 관계의 부침, 미래에 대한 불안 등 감정의 무게가 짓누르는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감정도 하나의 능력"이라는 위로를 건넵니다. 감정은 견뎌야 할 짐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게 하는 창입니다.또한, 작가는 감정의 회복 과정을 시간의 흐름으로 보여줍니다. 갑자기 나아지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하루, 반복되는 옥상, 반복되는 기억 속에서 주인공은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성장’이며, 한세계 작가는 그것을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그려냅니다.『옥상에서 기다릴게』는 요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읽고 나면 조용히 오래 남습니다. 이별 후의 감정, 말하지 못한 우정, 스스로와의 화해, 그리고 감정을 감당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이 작품은 2024년 한국 감성문학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한세계 작가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감정의 결을 정성스럽게 빚어냅니다. 그 결과, 독자는 이 소설 속 옥상에 함께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크고 작은 이별들, 복잡한 관계들, 감정의 파동 속에서 이 책은 질문합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그리고 속삭이듯 말해줍니다. 괜찮아, 그 감정은 너의 일부야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