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 작가의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은 서울이라는 익숙한 도시 공간과, 그에 대비되는 낯선 평행세계의 이중 구조 속에서 한 소년의 감정과 내면을 치밀하게 포착하는 성장소설입니다. 현실에서 소외된 십 대 주인공 ‘하라’는 우연한 계기로 현실을 벗어나 전혀 다른 세계로 진입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과 삶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얻습니다. 이 글에서는 하라가 경험한 두 세계의 대비와, 이를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감정의 층위를 깊이 있게 분석합니다.
서울이라는 현실: 고립된 일상과 감정의 단절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의 출발점은 현재의 서울이다. 소설은 도심의 빌딩, 무채색의 교실, 무표정한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에서 시작된다. 이곳에서 하라는 타인과 관계를 맺기보다는, 스스로를 감추며 살아간다. 감정은 표현되지 않고, 생각은 묻힌 채, 하루하루가 복사하듯 반복된다. 작가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감정이 억눌린 공간’으로 재해석한다. 빛나지만 외로운 도시, 연결되어 있으나 고립된 사회. 하라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지 못한다. 이 고립의 감정은 청소년 독자들에게 강한 현실감을 제공한다. 다정함보다는 기능이 강조되는 학교, 감정을 묻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 속에서 하라는 점점 무뎌져 간다. 이처럼 서울은 하라에게 현실이지만 동시에 탈출하고 싶은 감정적 감옥이다. 이은용 작가는 이 배경을 통해 감정의 단절, 관계의 피로, 그리고 현실의 무력함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바로 이 단절의 절정에서,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
평행세계의 등장: 감정이 살아있는 또 다른 차원
하라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또 다른 세계, ‘하라의 세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 세계는 현실과 닮아 있지만 모든 것이 조금씩 다르다. 사람들의 말투, 색감, 공간의 구조, 하라 자신조차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에서 하라는 감정의 미세한 떨림들을 경험하게 된다. 평행세계는 환상적 요소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는 하라의 내면이 투영된 ‘감정의 거울’이다. 현실에서 억눌렀던 감정들이 이곳에서는 실체를 가지며, 타인과의 관계 또한 감정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하라는 평행세계의 친구들을 통해, 감정이 오가고 소통되는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실감한다. 이은용 작가는 평행세계의 설정을 SF적 기법보다는 심리적 장치로 활용한다. 공간이 바뀐다는 설정은 하라의 내면이 변화를 시작했음을 상징한다. 이중 공간 구조는 현실의 냉소와 대조되는 따뜻한 가능성을 제시하며, 동시에 감정을 되찾는 회복의 여정을 상징화한다. 이 세계는 하라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하라가 스스로와 마주하게 된 공간인 셈이다.
이중 공간 구조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전환
『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의 가장 큰 특징은 ‘이중 공간’이다. 서울이라는 회색의 현실과, 평행세계라는 감정의 공간이 교차하며 구성된 이 소설은 독자에게 공간의 대비를 통해 감정의 깊이를 전달한다. 현실 공간에서는 무력감, 외로움, 억눌림이 중심 정서라면, 평행세계에서는 궁금증, 따뜻함, 그리고 점진적인 해방이 감정을 채운다.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단순한 이야기 전개 이상의 감정적 호흡을 설계한다. 하라가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시점에서, 그는 예전의 하라와 다르다. 감정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더는 도망치지 않는다. 이중 공간 구조는 독자에게도 복합적인 감정을 일으킨다. “나는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나의 감정은 억눌려 있는가”라는 자문을 하게 만든다. 하라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독자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것이 이은용 작가의 글이 가지는 힘이다.『하라의 세계가 열리면』은 단순히 두 세계를 넘나드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현실에서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한 소년이, 평행세계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회복하는 이야기다. 서울과 또 다른 세계라는 이중 공간은 단지 배경이 아닌, 감정의 구조이자 메시지다. 이은용 작가는 몽환적 설정 안에서도 현실적인 감정을 깊이 있게 포착하며, 청소년뿐 아니라 모든 세대에게 ‘감정과 회복’이라는 주제를 조용히 던진다. 현실과 마음 사이의 틈에서 방황하는 이들에게, 이 소설은 따뜻한 세계 하나를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