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말이 진부하게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말이 실제로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 있다면, 바로 평수화 작가의 『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입니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이와 체면,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유쾌하고 당당하게 벗어던진 인생 에세이입니다. 여든을 넘긴 할머니들이 비키니를 입고 바다로 떠난다는 설정은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유’란 무엇인지, ‘나다움’이란 어떤 것인지 깊이 사유하게 만듭니다. 지금부터 이 특별한 책을 통해 나이의 틀을 깬 삶의 이야기들을 만나보겠습니다.
비키니: 해방의 상징이 된 옷
『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에서 가장 상징적인 요소는 단연 ‘비키니’입니다. 사회가 규정한 ‘나이에 맞는 옷’이라는 개념을 통쾌하게 부수는 상징이죠. 비키니는 단순히 노출이 많은 수영복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비키니는 ‘잊고 있던 나 자신’을 되찾는 통로로 사용됩니다. 평생 가족과 자식, 사회의 기대 속에서 ‘여성’이 아닌 ‘엄마’, ‘할머니’로만 살아온 인물들이 자신을 위해 선택한 첫 번째 옷이 비키니라는 점은 많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평수화 작가는 비키니를 입은 노년 여성들의 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 몸은 아름답지 않다고, 혹은 보기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회적 기준에 도전하는 것이죠. 오히려 작가는 그런 몸에서 삶의 시간이 주는 깊이와 서사를 읽어냅니다. 몸의 주름은 ‘늙음’의 상징이 아니라, ‘살아온 흔적’이라는 메시지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이 책은 여성의 몸이 나이에 따라 숨겨져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뜨립니다. 그리고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죠. “당신은 지금 어떤 옷을 입고 살고 있나요 그 옷은 진짜 당신이 원한 선택인가요” 평수화의 서사는 위트 있고 따뜻하며, 동시에 도전적입니다. 비키니는 단지 수영복이 아니라, 억눌린 자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할머니: 사회적 역할에서 개인으로
우리는 ‘할머니’라는 단어 앞에 수많은 고정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뜻하고 인내심 많은, 희생적이고 조용한 존재. 하지만 평수화 작가가 그려낸 『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 속 인물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합니다. 이들은 반항적이며, 과감하고, 스스로의 욕망을 드러냅니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걸 왜 해?’라는 질문에 그들은 웃으며 답합니다. “이 나이니까 더 해봐야지.” 이 책은 노년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단지 회고적인 시선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감각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합니다. 작가는 ‘할머니’가 하나의 역할이나 책임이 아닌, 여전히 감정과 욕망, 꿈을 지닌 ‘개인’ 임을 강조합니다. 할머니들이 비키니를 입고 여행을 떠나는 과정은 곧 자신을 ‘이름 없는 여성’이 아닌, 온전한 주체로 되찾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처음엔 머뭇거리지만,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서로의 삶에 공감하며 ‘함께 나이 듦’의 의미를 재정립합니다. 이 책은 ‘나이 듦’에 대한 두려움과 거리를 좁혀줍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유연해지고, 더 솔직해지며,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특히 여성 독자들에게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노년이라는 시기를 아름답고 힘 있는 방식으로 상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자아 찾기: 여성 인생 후반부의 주인공이 되다
『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은 단지 외형적 일탈을 다룬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의 진짜 가치는 ‘자아를 찾는 여정’에 있습니다. 작가는 여성 인생의 전반부가 타인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후반부는 자신을 위한 시간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주인공들은 자신의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삶의 중심을 타인에서 자신으로 옮깁니다. 이 책 속 여성들은 결혼과 양육, 가족의 요구에 자신을 헌신해 온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비키니를 입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이제는 나를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이 선언은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독자의 가슴에 남습니다. 자아 찾기는 거창한 변화가 아닙니다. 익숙한 틀에서 벗어나기, 나를 위한 선택을 하기, 누군가의 기대가 아닌 내 감정에 귀 기울이기. 책은 이런 사소하지만 중요한 시도들을 통해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을 회복해 나가는지를 섬세하게 보여줍니다. 평수화 작가의 문장은 시적이면서도 현실적입니다. 거창한 철학 대신, 진짜 삶의 조각들로 구성된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나도 저럴 수 있겠다’는 희망을 줍니다. 『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은 ‘늦은 나이’가 아니라, ‘지금이 가장 적절한 순간’이라는 깨달음을 줍니다.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엔 나이도, 시기도 늦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가장 따뜻한 메시지입니다.『할머니들의 비키니여행』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삶의 철학을 담은 책입니다. 비키니를 입은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인생은 언제든 새로 시작할 수 있으며, 누구도 당신의 자유를 대신 정의할 수 없다고. 평수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나이라는 프레임, 여성이라는 역할, 사회의 눈치를 거부하는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나이와 체면이 아닌 ‘나다움’으로 사는 법을 배우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펼쳐보세요. 당신의 용기도, 여행도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