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유진 작가의 『호랑골 동품점』은 서울 골목 끝, 오래된 동품점이라는 기묘한 공간을 통해 잊힌 감정, 과거의 상처, 감정 회복을 이야기하는 감성 성장소설이다. 동품점은 단순히 오래된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감정이 깃든 물건과 기억을 연결하는 서사적 장치로 등장하며, 주인공이 스스로를 마주하고 성장해 가는 여정을 이끈다. 이 작품은 환상적인 설정을 품은 채, 현실 속 위로와 감정 회복을 촘촘히 담아낸 치유형 문학이다.
골목 끝에 숨겨진 동품점, 낯선 위로의 시작
서울의 오래된 동네, 개발에서 한 발 비껴 난 ‘호랑골’. 이곳 골목 끝에는 간판도 희미하고 이름조차 낯선 가게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호랑골 동품점”. 주인공 ‘해솔’은 우연히 이 가게 앞을 지나가다 발걸음을 멈춘다. 어딘가 이끌리듯 문을 열고 들어간 그곳은, 평범한 중고가게처럼 보이지만 무엇인가 다르다. 가게에는 수많은 물건이 놓여 있고, 그 하나하나에는 ‘감정 태그’가 붙어 있다. “후회가 깃든 필통”, “잃어버린 다정함이 담긴 손목시계”처럼, 물건마다 누군가의 감정이 담겨 있는 것이다. 해솔은 이곳에서 ‘기억을 사고파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감정, 외면했던 기억과 마주하게 된다. 작가는 이 ‘동품점’이라는 공간을 기억의 은유이자 감정의 보관소로 설정하여, 단순한 판타지를 넘은 심리적 위로의 장소로 확장시킨다. 골목이라는 설정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익숙한 듯 낯설고, 조용하면서도 이야기가 흐르는 이 공간은 독자에게 잔잔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골목 끝에서 의외의 만남을 시작으로 내면을 들여다보는 감정적 여정을 그리는 문학적 공간소설이다.
물건에 깃든 감정, 나를 비추는 거울
『호랑골 동품점』은 등장하는 물건 하나하나를 통해 사람들의 감정을 보여준다. 해솔이 처음 구매한 물건은 오래된 자전거 손잡이. ‘혼자가 익숙했던 시간의 냄새가 배어 있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중고품처럼 보였던 이 물건은, 해솔이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외로움과 이어진다. 작가는 물건을 통해 감정의 잔재를 서사화하고, 그 감정들이 새로운 소유자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다른 손님들은 물건을 통해 과거 연인을 추억하거나, 가족과의 미해결 된 기억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 동품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지만, 진짜 거래되는 것은 ‘감정의 조각들’이다.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감정이 그저 상징으로 머물지 않고 문학적으로 체험 가능한 실체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해솔은 다양한 물건을 접하고,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법을 배워간다. 감정은 억누르거나 숨기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작품 전반을 흐른다. 이처럼 『호랑골 동품점』은 동품이라는 실체를 통해 감정의 형체를 잡아주며, 감정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청소년 감성문학의 새로운 장을 연다.
상처를 마주하고 나아가는 성장의 서사
『호랑골 동품점』의 핵심은 결국 성장이다. 주인공 해솔은 이 동품점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고, 그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과거의 실수, 미안함, 두려움은 물건과 함께 기억된다. 해솔이 그것들을 외면하는 대신 직접 만지고, 기억하고, 감정을 말로 꺼내는 과정이 곧 그의 성장이다. 작가는 이 모든 과정을 과장 없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 담는다. 누구 하나 크게 울거나 극적인 용서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해솔의 변화가 깊고 단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감정 중심 문학의 힘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해솔은 동품점에 자신의 물건 하나를 맡기고 떠난다. 태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물건을 통해,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되기를.” 이 문장은 이 작품이 말하는 모든 것을 함축한다. 위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그것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가장 사적인 기억에서 시작된다는 것. 『호랑골 동품점』은 우리 모두에게 그런 기억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범유진 작가의 『호랑골 동품점』은 골목 끝에서 만난 작은 가게를 통해, 기억과 감정, 상처와 성장을 차분히 그려낸 감성 성장소설이다. 감정이 담긴 물건을 통해 내면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결국 다시 나아갈 힘을 얻게 되는 이 이야기는 감정 표현이 서툰 현대 청소년에게 따뜻한 위로와 안내서가 되어준다. 오래된 물건처럼 보이지만 마음속 어딘가를 건드리는 이 작품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감정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