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는 SF 장르를 차용하고 있으나, 핵심은 철저히 감정과 인간성에 대한 질문에 있습니다. 외계에서 온 존재와의 만남이라는 설정은 흔히 볼 수 있는 SF 소재지만, 김성중은 이 소재를 통해 오히려 인간과 비인간, 자아와 타자, 감정과 침묵 사이의 미묘한 균열을 조명합니다. 『화성의 아이』는 화려한 기술적 상상보다는 감정의 결을 따라가는 문학적 SF이며, 우리가 외면했던 내면의 감정과 윤리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이끌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 작품에 나타난 감정 묘사와 타자성의 문학적 의미를 심도 깊게 분석합니다.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 서사의 출발점
『화성의 아이』는 전통적인 외계 문명 탐사 서사가 아닙니다. 김성중은 ‘화성’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통해 우리와 다름을 지닌 존재를 등장시키지만, 그 존재는 침략자도, 구원자도 아닌 ‘관찰자’입니다. 이러한 존재가 인간 사회에 등장했을 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곧 사회의 윤리와 감정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치가 됩니다. 작품 속 주인공은 처음에 화성의 아이를 경계하며, 그가 우리와 얼마나 다른지를 나열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런 시선이 타자에 대한 이해보다는 인간 내부의 불안과 편견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화성의 아이’는 실제로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고 관찰합니다. 그의 존재는 낯설고 불완전하게 느껴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독자는 그를 통해 더욱 인간적인 감정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 스스로가 타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었는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단지 외계인이 아닌, 사회적 소수자, 장애인, 이민자, 성소수자와 같은 ‘우리 사회의 타자’들이 떠오르며, 이 소설은 현실의 윤리와 연결됩니다. 타자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곧 ‘나 자신이 얼마나 타자에게 닫혀 있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됩니다. 이는 문학이 타자와 자아의 관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김성중은 이를 매우 조용하고 서정적으로 구현해 냅니다.
감정이라는 주제의 섬세한 전개
이 작품에서 감정은 가장 큰 주제이자 서사를 끌고 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김성중은 격렬한 감정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 서서히 자라나는 감정을 그리는 데 집중합니다. 주인공은 처음엔 감정이 무딘 사람처럼 보이지만, 화성의 아이를 만나면서 내면의 정서를 의식하게 되고, 억눌려 있던 감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냅니다. 화성의 아이는 감정을 직접 표현하지 않지만, 그 주변에서 발생하는 ‘조용한 공기’, ‘침묵’, ‘눈빛’ 같은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는 감정을 단어가 아닌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함을 말하며, 작가는 이를 통해 감정의 본질을 되묻습니다. 우리는 감정을 정말 느끼고 있는가 아니면 감정을 흉내 내는 데 그 치는가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품 전반에 깔린 질문이기도 합니다. 화성의 아이가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고 모방하려는 시도는, 감정이 단지 본능이 아닌 학습 가능한 요소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또한, 작가는 주인공이 점점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변화를 통해, ‘감정은 관계 속에서 비로소 살아난다’는 메시지를 강조합니다. 감정이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타자와의 만남 속에서 비로소 실체를 얻는다는 이 철학은, 현대 사회에서 감정을 억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에 대한 반문이기도 합니다. 『화성의 아이』는 감정을 다룰 줄 아는 SF이며, 동시에 문학적으로도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습니다.
SF 속에서 펼쳐지는 감정의 윤리
이 작품은 장르문학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윤리적 질문의 밀도가 매우 높은 서사입니다. 화성의 아이는 단지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평소 무관심하게 대했던 존재들의 메타포입니다. 작가는 인간과 비인간, 감정과 논리, 친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윤리의 확장을 이야기합니다. 김성중은 인간 중심적인 서사를 비트는 방식으로 화성의 아이를 배치합니다. 화성의 아이는 결코 인간의 감정 시스템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를 맺으려 하고, 공감하려 합니다. 이는 인간보다 더 윤리적인 태도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타자에게 가지는 태도공감, 배려, 존중은 말보다 태도와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며, 『화성의 아이』는 이러한 관계적 윤리를 조용히 설파합니다. 작품 후반부에서 주인공은 화성의 아이와의 관계를 통해 자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됩니다. 타자를 대하는 방식은 곧 자기 내면을 대하는 방식이기도 하며, 이는 자아 성찰이라는 또 다른 차원의 서사로 확장됩니다. 결국 이 소설은 외부와의 연결을 통해 내부로 침잠하는 흐름을 보여주며, 윤리와 감정이 어떻게 문학적으로 교차할 수 있는지를 증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