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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 책 3월, 끝과 시작 관계의 이별 봄, 흔들림

by 달빛서재03 2025.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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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마치의 책 표지

정현아 작가의 『3월의 마치』는 3월이라는 계절의 이면에 숨은 감정의 흔들림과 청소년기의 불안한 정체성을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많은 청소년문학이 ‘변화’를 다루지만, 이 작품은 변화를 감정의 미세한 결로 따라가며, 독자에게 더 깊은 공감을 유도한다. 이별이라는 감정적 사건을 중심에 두되, 그것이 삶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자아의 씨앗이 되는 과정으로 풀어내는 방식은 ‘조용한 성장’이라는 주제에 완벽하게 부합한다. 따뜻한 봄을 맞이하기 전, 정리되지 못한 감정과 이별의 후유증을 안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 감정의 틈을 메우는 ‘봄의 책’이 된다.

3월, 끝과 시작이 겹쳐지는 시간

『3월의 마치』는 ‘3월’이라는 계절적 배경 자체가 서사의 구조이자 인물 감정의 리듬으로 작용하는 독특한 작품이다. 주인공 지유는 졸업과 입학 사이의 공백기 속에 있다. 형식적으로는 중학생이지만 이미 중학교는 끝났고, 고등학생으로 인정받기엔 아직 너무도 애매한 시기다. 그런 지유에게 3월은 단지 달력이 넘어간 시점이 아니라, 소속감을 잃어버린 불안의 시기로 다가온다. 이 시점의 지유는 명확한 감정을 가지지 못한다. 자신이 무슨 기분인지 알지 못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고 싶은지도 모르며, 변화 속에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혼란스럽다. 작가는 그런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정서 상태를 계절의 날씨와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감정의 설득력을 높인다. 갑자기 포근했다가 다시 추워지는 날씨, 꽃샘추위와 미세먼지가 함께 오는 날, 얇은 겉옷을 입었다가 다시 두꺼운 외투로 돌아가는 반복 속에서, 지유는 점점 ‘계절처럼, 감정도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진실을 체득한다. 특히, 이러한 모호한 계절이 소설의 서사적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3월이라는 시간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감정의 구조이자 인물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장치가 된다. 지유는 따뜻한 봄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자아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지만, 그 시작은 오히려 혼란과 고립에서 비롯된다. 『3월의 마치』는 3월을 ‘시작의 계절’이 아닌 ‘혼란의 계절’로 해석함으로써, 성장은 늘 긍정적이지 않으며, 흔들림 속에서 태어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관계의 이별, 감정의 정리

지유는 친구 윤슬과 멀어지는 중이다. 그것은 뚜렷한 갈등이나 다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말수가 줄고, 문자에 답이 느려지고, 함께 가던 길에서 각자의 방향으로 돌아가게 되는 사소하고 서글픈 거리감에서 시작된다. 정현아 작가는 이별이라는 테마를 과장되거나 극적인 사건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작고 조용한 단절을 통해 진짜 감정의 깊이를 드러낸다. 작품 속에서 지유가 겪는 이별은 윤슬과의 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모의 이사, 가족 간의 심리적 거리감, 중학교 친구들과의 무언의 작별, 낯선 새 교복이 주는 불편함 등 일상 속 작은 변화들은 모두 감정의 파편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이별을 단절이나 상실로 해석하기보다, 감정을 직면하고 이해하는 통로로 활용한다. 지유는 이러한 감정의 격류 속에서도 울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담담하다. 하지만 그 담담함은 무감정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알아채지 못하는 상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자는 지유가 윤슬에게 썼다가 지운 메시지,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친 인사, 가족 앞에서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혼자 방문을 잠그고 가만히 앉아 있는 장면을 통해 감정의 억눌림과 흐름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이처럼 『3월의 마치』는 이별을 단순한 감정 소모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정리하고 새롭게 직면할 기회로 삼는다. 지유는 “나는 그냥 어색해졌다는 말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싶었다”는 내면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았는지를 인정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진짜 성장의 시작이다.

봄, 흔들림 속에서 자란 감정의 싹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지유는 자신을 둘러싼 감정의 껍질을 서서히 벗기기 시작한다. 이전 같으면 피했을 순간에도 스스로 감정을 들여다보려 하고, 더 이상 윤슬의 답장을 기다리기보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마음을 연다. 변화는 단숨에 오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을 의식하고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이 시작되었다는 것 자체가 변화의 증거이다. 정현아 작가는 봄이라는 계절이 단지 꽃이 피고 새 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이 아니라, 감정의 흔들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시간임을 강조한다. 우리는 흔히 봄을 ‘시작’의 계절로 인식하지만, 작가는 그 시작이 결코 매끄럽지 않다는 점을 조용히 짚는다. 겨울의 그림자가 아직 남아 있고,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가야 하는 부담이 있으며, 무언가 끝났음에도 미련이 남아 있는 시간. 이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얽힌 봄의 정서는 ‘불안하지만 생기 있는 감정’으로 표현된다. 지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말한다. “나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변했고, 그걸 아무도 몰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장은 성장소설의 결말로서 매우 인상 깊다. 성장의 증거는 외부의 인정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변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아는 감정의 성숙이다. 그리고 『3월의 마치』는 그 감정의 시작을 이별과 흔들림, 그리고 고요한 수용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정현아 작가의 『3월의 마치』는 감정의 불안정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아를 발견해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이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성공과 긍정, 극복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이 작품은 ‘불완전함’, ‘주저함’, ‘정리되지 않음’이라는 감정의 조각들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그리고 독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런 감정도 괜찮다고, 지금 너도 괜찮다고.”3월은 꽃이 피기 직전의 계절이다. 『3월의 마치』는 그 직전의 시간, 무언가 시작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의 준비 과정을 이야기한다. 아직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선명하지도 않지만, 그 흔들림이 결국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거라는 조용한 확신. 이 책은 그런 봄의 감정을 가슴에 품고 있는 청소년은 물론, 여전히 감정을 다루는 것이 서툰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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